월간 도르라미를 호수별로 볼수 있습니다. 글보기제목[기획-정의3]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대하는 그 속내 (12년 7월)2012-08-15 17:30작성자iccenter첨부파일크기변환_정의기획3.jpg (62.8KB) ; 사무국장 돈키호테 사람이 살다보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것의 선택 기준이 무엇인가는 그 사람의 양심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번 글에는 양심적인 삶과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한번 써보려고 한다. 나는 한 지방자치 단체에서 근무한다. 그 지방자치 단체에서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들과 상담하고 조사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협조한다. 국민기초생활수급권이란 어떤 이유에서든지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지 못 할 때 국가에서 딱 밥만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법에는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의 경제적 보호를 해 주는 것이다. 가구원수에 따라 다르지만 2012년 기준 1가구 최대 현금급여가 45만원 정도다. 그런데 동료들과 협조하며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무릇 행정을 하는데 있어서 법집행이란 민원인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고 최대한 민원인의 입장에서 처리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 이상한 사례 중 한가지만 이야기 해 보겠다. 이해를 돕기위해 간략히 설명을 하면 1인가구 최대 45만원 중에는 생계급여 얼마 주거급여 얼마 이렇게 나뉜다. 그런데 남의 집에 무료로 얹혀 살고 있는 사람은 주거급여가 깎여서 나온다. 이 때 조사담당자가 주변 임차료를 조사해서 알 수 있으면 그 만큼만 알 수 없으면 최저주거비의 20%로 책정을 할 수 있게 업무지침에 나와있다. 쉽게 설명해서 담당자가 조사를 더 열심히 해서 주거급여를 더 많이 나올 수 있게 할 수 있으며 그 금액은 1인가구 최대 기준 3만원에서 4인가구 기준 18만원까지 더 많이 나오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최대 1인가구는 45만원 한도에서 말이다. 일처리 하다가 없는 사람들한테는 돈 만원이 아쉬우니 최대한 민원인의 입장에서 처리를 하자고 싸운적이 있다. 그러나 벽에 부딪혔다. 전체 업무처리의 통일성을 이유로 합리적인 나의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 단단하고 공고하게 똘똘 뭉쳐서 그렇게 안된다고 이야기 하니 계속 싸우는 나만 미친놈 취급 받고 기껏해야 지 혼자 잘난놈 혹은 열정적인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그 기준을 깨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바로 법을 좀 아는 사람이거나 사람으로 대하기 힘든 초절정 진상민원인들은 내가 동료들에게 주장했던것을 관철시킨다.(물론 당연히 되어야 하는거지만...) 그럴때 마다 어 이거뭐지? 하는 어의없음과 실소가 나온다. 난 갑자기 궁금해졌다. 동료들이 합리적으로 말할 때는 업무 통일성이란 이유로 귓등으로도 안듣다가 도대체 왜 그 공고했던 통일성을 스스로 깨고 통일성을 최고로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은 이런일에 대하여 통일성의 이유로 문제제기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선택의 기준이 개인적 안위였던 것이다. 대부분 법을 모르거나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니, 이후 혹시 업무를 잘못처리하여 감사나 점검에서 걸렸을 때 지적사항을 편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통일성이란 벽을 만들어서 업무를 처리하다가 간혹 법을 알거나 아니면 견디기 힘든 진상민원인이 왔을 때는 그 통일성이란 벽을 살짝 넘겨주는 것이다. 철저하게 민원인의 입장이 아니라 해당 업무를 하는 자기 자신의 편의를 위한 행동이다. 어떤 것이 양심적인 것인지 알면서도 눈을 감아버린다. 즉, 순진하게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고만 있으면 보자기로 본다는 소리다. 따지고 들어야 그때서야 내가 누릴 수 있는 최선의 권리를 누릴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 비겁하다. 최근 딸아이 유치원에 급식문제로 유치원측과 크게 싸우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유치원의 급식 문제가 비단 우리 딸아이가 다니는 유치원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대동소이 하다는 것이다. 많은 학부모들이 그 동안 소수로 유치원 급식문제들을 가지고 싸웠다. 당연히 유치원들은 연합회가 있고 또 거대 자본주이기 때문에 대부분 꿈쩍하지 않았다. 성장기 유아들에게 단순히 학부모들이 내는 급식비용만 대비해 보더라도 터무니없는 식단을 주고 고작 한다는 말이 “선생님들도 다 똑같은 거 먹는다.”, “집에서는 얼마나 잘 먹냐?” 였다. 유치원 선생님들도 자기도 먹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얼마나 부실한 식단이고 음식물쓰레기 줄인다는 미명하에 야박한 배식량이었는지... 그런데 한마디 말이 없었다. 생계가 걸려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솔직히 미웠다. 그리고 아이를 믿고 맡겼는데 배신감을 느겼다. 그런데 250명 정도의 유치원에서 대략 180명정도의 학부모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싸움을 시작하니 유치원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엄두도 못내던 엄청난 일들이 발생했다. 각계 각층에서 일하는 학부모들이 법률적 검토와, 경제적 검토를 끝내고 함께 모여 집단으로 항의하니 유치원의 태도는 죄송하다, 잘못했다, 앞으로 잘하겠다로 계속 이어지고 내부에서 선생님들도 물론 익명이 전제였지만 죄송하다, 학부모님들이 옳다, 저희도 힘들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보고만 있으니 보자기로 보다가 집단적으로 따지고 드니 유치원에서는 개선하겠다고 하고 내부의 선생님들도 양심선언을 했던 것이다. 물론 결과는 대승이고 유치원에서 앞으로 확인 가능한 급식 대안을 내 놓기로 했다. 이렇게 함께 바꾸는 사회, 공동의 선을 향한 행동들과 양심의 선언들이 정의로운 것이다. DJ DOC의 노래가사중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대하는’이라는 노래가사가 있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정의롭지 못하고 양심적인 행동을 안하며 현실의 개인적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으로 이해된다. 한 사회 속에서 정의라는 것을 삶속에서 실천하는 문제를 철저하게 개인적 양심과 염치에만 맡길 수는 없다. 아니 만약 그 사회가 삶이 경제적으로 예속되지 않은 사회, 정치적으로 예속되지 않고 만인이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라면 그래도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특히 한국사회는 돈 중심의 천박한 사회이다. 이럴 때 정의를 개인적 양심과 염치에만 맡겨 둔다면 우리사회는 지속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될 것이다. 나의 삶속에선 나는 행동을 선택할 때 얼마만큼 정의를 염두해 두고 행동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다. 태그 목록 댓글 [0] 댓글작성자(*)비밀번호(*)자동등록방지(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내용(*) 댓글 등록 더보기이전[영화평] 후회하지 않아 (12년 7월)iccenter2012-08-15-[기획-정의3]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대하는 그 속내 (12년 7월)iccenter2012-08-15다음[기획-정의2] 정의롭게 사는것은 무엇일까 (12년 7월)iccenter2012-08-15 Powered by MangBoard | 워드프레스 쇼핑몰 망보드 Share it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