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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여는글] 함께 산다는 것 (12년 8,9월 합본호)2012-09-3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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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산다는 것 교육국장 새벽별 2009년 평택, 쌍용차 공장에는 ‘함께 살자’라는 노동자들의 절규가 빨간 락카로 공장 곳곳에 쓰여 있었다. 그리고 2012년, 여의도에는 빨간색 플랑에 ‘함께_국민과 함께 당신과 함께’라는 새누리당의 모토가 펄럭이고 있다. 그리고 ‘함께 살자’ 외치던 2009년의 쌍용차 해고자들은 지금 ‘함께’라는 새누리당의 빨간 플랭카드를 매일 보면서 농성 중이다. 새누리당의 빨간색 ‘함께’ 플랭카드가 걸리던 시간에 쌍용차 여의도 농성장에서는 그늘막 설치를 막는 경찰과 싸우던 노동자들이 연행되었다. 뜨거운 햇볕을 가리기 위한 그늘막을 설치하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함께’는 도대체 누구와의 함께를 이야기 하는 걸까. 어릴 때 나는 고무줄 놀이를 참 못했다. 그럼에도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함께할 수 있었다. 나같은 사람을 구제(?)하는 ‘깍두기’라는 규칙 덕분이었다. 깍두기는 어느 편에 속하지는 않지만, 참여자의 순서가 모두 돌아가고 나면 깍두기로 지칭되는 사람의 차례가 돌아오는 것이다. 깍두기는 나처럼 놀이의 실력이 너무 떨어지거나 혹은 놀이의 참여자가 홀수일 경우에 놀이에서 빠져야 하는 사람이 없도록 한다. 이것은 오랜 세월 아이들이 ‘함께’ 해온 방식이다. 조금 실력이 부족한 친구, 조금 늦게 온 친구를 배제하지 않고 모두가 즐겁게 놀기 위한 지혜인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한 지혜를 모으지 않는 것 같다. 경쟁의 사다리에 매달려서 다른 이를 딛고 올라서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 요즘 증가하고 있는 묻지마 범죄를 보면서 깍두기 정신이 사라지고, 현실에서 배제된 이가 갖는 분노가 왜곡되어 표출되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하고 참 서글프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가 어려운 현실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청년실업의 증가는 함께 살기 위한 지혜를 모으기 보다는 ‘혼자’라도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를 밟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비정규노동자들의 증가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을 증가시켜 비정규직에 무관심한 이기적인 사람들로 만든다. 청년실업을 해결한다면서 청년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청년들은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대부 업체를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 용역이라는 공식적인 깡패집단이 경찰과 똑같은 무장을 하고 노동자들을 때리고 짖밟는 것이 2012년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민주당 할 것 없이 ‘함께’를 부르짖는 모습에 ‘그저 웃을’ 수밖에. 최저임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이소선 어머니 추모1주기를 맞아 전태일 정신을 이야기하겠다고 하고, 노동자들의 파업에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최루액을 퍼붓고 테이져건을 쏘며 노동자들을 테러범 대하듯 진압한 행위를 자기자랑으로 삼는 조현오 같은 이가 국회의원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표를 던지면 정권교체를 하여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에게 한 표를 던져야 하나. 아니면 창조적인 도전을 하며 살아온 정치신예에게 희망을 걸어야 하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듯한 분위기 이지만 박근혜만 아니면 괜찮다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요즘 촬영 현장에서 ‘정리해고 철폐하라, 비정규직 철폐하라’ 라는 구호 다음으로 많이 듣게 되는 구호는 ‘우리가 희망이다, 세상을 바꾸자’ 라는 구호다. 처음에는 그냥 의례적인 슬로건 같았는데 박근혜가 전태일 정신을 언급하며 쌍차 분향소를 찾고, 용산참사 유가족을 만나겠다고 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슬로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가 대한문을, 용산을 찾겠다는 것은 ‘(싸우는) 우리가 희망이다’라는 우리의 슬로건을 ‘(대통령이 될)내가 희망이다’라는 내용으로 바꾸기 위해서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걸게 되는(만드는) 섣부른 희망이 ‘함께 살자’고 절규하는 이들을 벼랑으로 몰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과도한 것일까. 깍두기의 지혜를 되살려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 갈 것인지를 찾아 움직이지 않으면, 누군가가 만들어낸 희망을 안고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고무줄놀이를 못하는 아이는 절대로 고무줄놀이를 함께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사람과 세상에 미움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미움을 품고 살아가는 구성원이 많은 사회가 건강할 수 있을까. 그리고 건강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들 스스로 ‘함께’에 대한 내용을 만들어 가자.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것에 기대지 말고, 나의 목소리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 마음껏 욕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목소리 내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 거짓 희망의 유혹은 우리들의 ‘함께’를 가진자들만의 ‘함께’로 바꾸어 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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