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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복지.기획1] 복지는 내 삶이 풍요로워 지는 것 (12년 8,9월 합본호)2012-09-3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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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크기변환_사회복지기획.jpg (39.9KB)

 ; 선전국장 채식가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하다보면 이런 분을 자주 본다. 주민센터에 들어와서 두리번 거리다가, 어떻게 오셨는지 물어보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시며, “이런 거 한 번도 받아본적이 없는데..”부터 얘기를 시작한다. 특히 처음 복지지원을 받는 사람들이 주로 이런 경우가 많다. 이분들은 이에 대해 굉장히 부끄러워한다. 고령층으로 갈수록 그런 분들이 더 많으시다. 이 분들은 왜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복지지원을 누리는 것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할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아직도 복지지원을 받는 것은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개인의 몫은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데, 자신이 그 책임을 못졌기 때문에 부끄럽다는 생각들이다.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기 창피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회복지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만 봐도 대부분 복지라는 것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서의 복지역사는 매우 짧다.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복지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복지에 대한 인식 역시도 아직 가난한 사람들만 지원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점차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깨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특히 젊은세대들은 더욱 그렇다. 예전에는 소득이 적고 소위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주었던 급식비 지원이 초중고에 이르는 전체 학생에게 확대되며 어린애들이 혹시나 밥값을 지원받으면서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더 커지고 있다. 복지가 이제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지원되는 보육료도 마찬가지다. 만0세부터 5세까지 일정액의 보육료가 지원되는데, 이 역시 소득과 무관하게 지급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개인이 키우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의 인재를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이 확대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사회에서 보편적 복지들이 점차적으로 확대되고 있고, 내 삶과 복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5년전 쯤, 노르웨이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박노자씨의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라는 책을 보며 노르웨이 사회와 한국사회의 비교에 많은 충격을 받았었다. 노르웨이의 경우 국가에서 모든 보육료와 보육시설, 학비를 지원한다. 의료비 역시 모두에게 지원된다. 즉 보편적 복지정책이 가장 잘 갖추어진 나라다. 책을 통해 노르웨이 사람들의 경우 보육이나 교육 같은 것들이 기본적으로 국가와 사회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온전히 가정에게만 책임이 부과 되었었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당연시 되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애기를 키우는 것은 가정에서 그 의무를 다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노르웨이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아이는 그 개인이 키우는 것에 앞서, 노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므로 그가 양육되고 교육받는 것들 역시도 국가나 사회에서 제공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런 복지정책들이 조금만 더 갖추어진다면 나의 삶은 훨씬 풍요로워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라. 복지가 잘 갖추어지지 않은 우리 현실은 너무 척박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출산률이다. 세계 꼴지다. 애기들 1~2명 키우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지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는 아니다. 어릴 때는 보육료, 분유값. 학원비로 등골이 휜다. 고액의 대학등록금은 빛으로 바뀌어져 나를 괴롭힌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 결과적으로 대학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떠밀려간 것에 다름 아닌데, 대학등록금을 온전히 개인에게 부담지운다는 것 역시 정말 억울하지 않는가? 빚을 내서 대학을 다닐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에서 우리에게 복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작년에 있었던 반값등록금 집회를 보면, 젊은이들의 분노를 잘 알 수 있다. 복지란 내 삶이 풍요로워 지는 것이다. 사회가 공동으로 보육과 교육을 책임지고, 내가 아플 때 의료를 책임져주는 사회에서 나는 조금 더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대선이 얼마남지 않은 시점, 보편적복지는 이제 대선주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용어가 되어버렸다. 바로 시민들이 보편적복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복지가 가난한 사람들만이 누리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될 때 우리의 삶도 더 풍요로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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