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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사람사는 이야기] 딸들과 함께한 네가족의 제주도 여행기 (12년 11월)2012-12-02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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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크기변환_사람사는이야기.jpg (51.6KB)

 ; 회원 이미영 “엄마, 음료수 왜 안줘?”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현서가 서너 번을 묻는다. 이번에는 제주감귤 마셔야지 하면서 미리 마실 음료수까지 정한다. 이제 여섯 살인 큰딸 현서는 이번에 제주도를 가면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서 주는 음료수에도 설레하는 현서에게 이번 제주도 여행은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왔을까? 난 언제 제주도에 갔었는지 생각해본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수학여행 때였다. 사진은 몇장 있지만 어디를 갔었는지, 무엇을 했었는지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 ‘아마도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일정에 맞춰 따라다니기만 해서 그랬겠지’라고 생각하며 제주도 여행에 대한 책을 한 권 주문했다. 그리고는 현서랑 한 달 동안 “제주도 가면 뭐할까?”하면서 주황색 색연필로 동그라미도 하고,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가자”면서 가위표도 하고 그렇게 대강 갈 곳을 골랐다. 현서와 내가 그러는 동안 남편은 일하면서 틈틈이 숙소와 비행기, 렌터카를 예약했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은 가서도 좋지만 가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이 더 즐겁다고. 그 말을 실감하게 하는 이번 제주도 여행은 우리 네 가족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여행이었다. 제주도에 도착한 첫날, 렌터카를 빌려 만화 ‘식객’에 나왔던 맛집에도 가고 사려니 숲을 지나 제주마방목지에 내려 멀리에 있는 말만 구경하다가 가을 제주도에서는 꼭 가야한다는 ‘산굼부리’로 서둘러 향했다. “와우~~!!”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억새 군락지의 풍경을 보고 계속 탄성을 질렀다. 남편은 그런 우리를 사진에 담아내느라 바빴다. 지금 생각하니 좀 미안하다. 사실 제주도에서 남편은 우리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운전하고 사진찍고. 둘째 날 아침은 제주도 파도소리와 함께 시작했다. 아침엔 항상 TV소리로 시작하던 일상을 이렇게 시작하다니, 이런 사소한 것조차 여행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이리라. 두 살 된 작은 딸도 여행 온 것을 아는지 항상 8시가 넘던 기상시간이 한 시간 당겨졌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한 우리 가족은 숙소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대충 아침을 먹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인 협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해안도로를 타고 가는 동안 우리의 신혼여행지였던 남태평양의 팔라우가 떠올랐다. 바다 색깔하며 나무들하며... 도로 표지판이 한글인 것을 제외하고는 팔라우의 풍경과 비슷한 제주도. 좋다. 이 말 한마디 말고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협재해수욕장에 도착해 바로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말로 파란 바닷물이 보이는 곳으로 달렸다. 그런데 밑에 깔린 하얀 고운 모래가 내 발을 붙잡는다. 빨리 뛸 수가 없다. 거기에 바람까지 온몸으로 불어온다. 그제서야 천천히 풍경을 음미한다. 숙소에서 보았던 비앙도가 보이고 하얀 모래와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얼굴은 그다지 예쁘지 않은 풍만한 인어아줌마(?) 동상이 서있다. 우리도 그 품에서 사진을 멋지게 찍어보려고 했건만 바람에 실려 오는 모래와 엄청나게 따사로운 햇빛이 눈을 똑바로 뜰 수 없게 하여 풍경은 좋지만 표정은 안 좋은 사진 한 장을 만들어내는데 그쳤다. 다음으로 현서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시식할 수 있다는 “초콜릿 박물관“에 갔다. 현서가 아니었으면 일정에조차 넣지 않았을 그런 곳. 그래서 별로 기대를 안 하고 갔는데, 기대를 전혀 안 해서였을까? 생각보다 괜찮았다. 무엇보다 시식으로 준 초콜릿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달지 않고 입에서 살살 녹는 그 맛, 현서가 좀 더 먹고 싶다고 하니 현서 손바닥 한가득 시식용 초콜릿을 주신다. 3만원이 넘는 초콜릿을 살까말까 망설이다 집에 있는 식구들 생각에 한 상자 구매했다. 좋은 날씨 덕에 박물관 앞 감나무와 모형 기차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도 찍고, 모슬포 항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또 서둘러 떠났다. 남편이 먼저 제주도에 다녀온 선배에게 맛집을 소개받아 간 곳이었는데, 30분 정도 기다려서 점심을 먹었다. 원래는 무슨 조림을 먹으려 했으나, 1시도 안되어 벌써 재료가 떨어져 먹을 수 없다하여, 애들하고 같이 먹을 겸 친정엄마가 꼭 먹어보라했던 갈치국을 시켰다. 식당 아줌마가 맵지 않다하여 믿었으나 청량고추의 칼칼함을 맛보고 깜짝 놀랐다. 애들은 갈치 살을 발라 밥에 비벼 먹이고, 난 끝까지 앉아서 국물에 밥까지 말아서 다 먹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갯깍주상절리. 화산활동이 만들어놓은 신기한 지형에 놀라기도 전에 주차장에서 주상절리까지 가는 해안가의 돌덩이들에 발이 끼고 넘어지고 하는 통에 기진맥진했다. 그래도 힘들게 도착해서 조금 구경하고 가려는데, 그 순간 작은 딸이 큰 실수(?)를 하여 바로 차로 돌아왔다. 결론은 주상절리까지 걸어간 시간은 30분 이상 이었으나, 구경한 시간은 3분도 채 안되었다는 것. 오설록 티뮤지엄과 미니미니랜드를 들러 남편이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꼭 가고 싶다 주장했던 구럼비로 갔다. 그곳을 있는 그대로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만나 남편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경찰과 대치해있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으며 즐기러 제주도에 와있는 것에 대해 그 분들께 정말 미안해했다. 그리고 “경찰은 나쁜 짓 하는 사람을 잡아가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여섯 살 큰딸은 경찰들이 구름비를 지키러 이렇게 많이 왔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정말로 진실을 얘기해 줘야 할지 말아야할지 고민 고민 하다가 결국은 그냥 천천히 알려주기로 하고 구럼비이야기가 담긴 엽서를 한 세트와 "peace"라고 그린 목걸이를 사서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까지 개장하는 천지연 폭포를 보고, 인터넷에 제주도 맛집하면 일등으로 나오는 “쌍둥이 횟집”에 가서 거하게 저녁을 먹고 둘째 날도 정말 알차게 제주도를 몸으로 느꼈다. 제주도에서 마지막 날은 제주도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꼭 해보기로 했다. 바로 승마. 시간이 너무 아까워 아점 먹을 생각으로 아침도 안 먹고 집에 돌아갈 짐까지 모두 챙겨서 차에 올랐다. 제주도의 동쪽 해안으로 향하는 길은 이제 개발 중인지 공사하는 곳이 많았다. 한참을 가다가 승마장에 내려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현서와 나는 말에 올랐다. 이것저것 경험을 해봐야 뭐를 잘 하는지 안다고, 현서가 승마를 그렇게 잘 할지는 생각도 못했다. 여덟 살 다른 아이도 겁나서 못타는 말을 20분 탄 것도 모자라서 더 태워달라고 조르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인심 좋은 승마장 주인아저씨가 앞에 단거리 코스를 서너 바퀴 더 태워 주셔서 현서가 말에서 내리게 되었다. 겁이 엄청 많은 현서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경험이었다.우리의 제주도 마지막 목적지인 김영 미로공원에서는 배고픔도 잊은 채 신발에 먼지가 뽀얗게 앉을 정도로 열심히 열심히 미로를 찾아 종을 울렸다. 첫날도 그랬듯이 내가 먹고 싶은 순댓국, 둘째 날은 갈치국, 마지막 날도 의도하지 않았으나 고기국수(이 또한 내가 먹고 싶어 했던 것)를 먹었다. 남편은 계속 말없이 내 의견에 따라주다가 마지막 날 공항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웃으며 말한다. “이번 여행은 현서 가고 싶은 데 가고, 당신 먹고 싶은 거 다 먹었네.” 미안하고 고마웠다. 큰 딸 현서는 제주도 얘기만 나오면 또 가고 싶다고 얘기하고, 작은 딸 예서는 제주도 가기 전엔 “제주도”라는 말도 잘 못하더니 이제는 어설프지만 손가락으로 반원을 그리면서“슈~웅. 지주또”(비행기 타고 제주도 다녀왔다는 뜻) 라고 얘기를 한다. 우리 딸들이 어리지만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이 좋았나보다. 이번 여행을 시작으로 매년 한 번씩은 빚을 내서라도 여행가는 것을 해보려고 한다. 남편이 말한다. 일억 빚 있으나, 일억 천 빚 있으나 거기서 거기라고.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많이 얻어 올 수 있는 경험들을 우리 아이들이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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